기도의 방법
기도와 관련하여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방법, 형식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혜롭게 상황에 적합한 형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함과 동시에, 기도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이상 방법이나 형식의 문제로 상호 비방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다양하고 심도 있는 기도의 방법들이 영성훈련 가운데 계승되어 왔으나 한국 개신교의 경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훈련되어지지 못했다.
■ 시간
매일 아침(시5:3), 하루 종일(시86:3), 아침저녁으로(시92:2), 밤에(심야기도)(시119: 55), 새벽에(새벽기도)(막1:35), 밤새도록(철야기도)(눅6:12), 오후에(행3:1), 시간을 정해놓고(행3:1), 정오에(행10:9), 항상(골4:2), 쉬지 않고(살전5:17)
■ 자세
머리를 숙이고 함(창24:26), 소리 없이 함(삼상1:12,13), 손을 들고 함(왕상8:22),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함(왕상18:42), 벽을 보고 함(왕하20:2), 엎드려서 함(마26:39), 가슴을 치면서 함(눅18:13), 하늘을 쳐다보며 함(요11:41), 무릎을 꿇고 함(행20:36)
■ 기도할 때의 올바른 태도
회개하는 마음으로(대하7:14), 순결한 마음으로(시66:18), 간결히(전5:2), 전심전력하여(렘29:13),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 없이(마6:5,6), 은밀하게(마6:6), 중언부언하지 않고(마6:7), 타인의 죄를 용서하며(마6:14), 간절히(마7:7), 인내하며(막10:46-52), 믿음으로(막11:24), 겸손한 마음으로(눅18:10-14), 성령 안에서(엡6:18), 감사하는 마음으로(빌4:6), 의로운 자세로(약5:16), 순종하는 마음으로(요일3:22)
※ 예수님이 경계하시는 잘못된 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두 가지 잘못된 기도를 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첫째는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기도요, 다른 하나는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이다.
1) 바리새인의 외식하는 기도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5).”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먼저 외식하는 기도를 경계하신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외식하는 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들은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큰 거리 어귀에 나와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했다. 그들이 얼마나 사람에게 보이는데 신경을 썼는가 하는 점은 그들이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면서 예루살렘의 장날인 월요일과 목요일을 택하여 금식했다는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하고 책망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모든 사람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하려는 선한 뜻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외식이 지나쳐, 외모를 중시하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헛된 교만과 욕망에 빠져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를 낳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경계한다. 특히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그분과 교제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생각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는 잘못된 기도가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경계하신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경계하면서 분명하게 기도의 요체를 가르치고 있다.
첫째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의 외모보다는 기도자의 중심을 하나님께 바쳐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밀한 골방의 기도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도, 즉 마음의 기도이다. 우리의 마음만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되어 있으면 표현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5:6).”
둘째로,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우리의 외모나 표현이나 방법이나 기술 때문에 기도의 응답이 좌우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골방을 보신다. 우리가 떠듬거리거나 기도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이 그를 향하여 중심으로 기도하면 그분은 받으신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는 엘리 제사장이 보기에는 술에 취한 자가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제사장은 한나를 향해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삼상1:14).”고 책망한다. 그러나 한나는 중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사 사무엘을 낳아 타락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제사장을 삼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쏟아 하나님과 교제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방식이나 표현이나 외모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진정 마음을 바쳐 기도하는 중심의 기도, 골방의 기도를 격려하고 개발해야 한다. 떠듬거리는 기도, 연약한 기도, 유창하지 못한 짧은 기도 때문에 고민할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이다.
2)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느니라(마6:7).”
예수님은 바로 이어 이방인의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기도를 경계하신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말에 말을 반복하여 하는 기도이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 도시 에베소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상을 모신 신당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신당에 들어가 아데미 여신상 앞에서 “크다 아데미여!” 하는 기도를 반복해서 드리면 기도 응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때 기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크다 아데미여!”를 많이 반복하느냐에 따라서 기도의 응답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쉬지 않고 그 말을 반복했다.(행19:34) 이같은 이방인의 기도에 대한 이해는 철저히 공덕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기독교 기도생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방인들처럼 기도를 길게 하여야 잘 응답받는다 생각하여 더 길게 기도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시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이방인들은 얼마나 열심히 길게 기도했느냐에 따라서 신의 응답이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기도의 응답이 신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쟁취해서 얻어내어야 할 보상이나 대가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누가 더 많은 공덕을 쌓았느냐? 누가 더 말을 많이 하고 더 오래 기도했느냐에 따라 기도의 응답이 당연히 달라진다고 믿었다.
이같은 이방인의 사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며,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기독교의 은혜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응답을 좌우한다는 공덕종교로 떨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히 한마디로 이러한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느니라' 즉, 기도의 길이와 기도의 응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기도를 길게 했기 때문에 응답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짧게 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기도(주기도)는 30-35초의 기도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30초만큼 짧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길게 기도하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기도가 길든지 짧든지 간에 우리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기도 제목이 넘쳐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짧은 시간이지만 심령을 집중하여 중심으로 기도 드리게 되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다.
신앙은 ‘전체 삶’이다. 평소 자신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과 삶이 일치하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면, 아무리 그 형식이 정교하고 수려하며, 오랜 시간 공력을 쌓는다 할지라도, 어찌 그 기도를 진실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자식과 말 없어도 진실한 자식을 어찌 부모가 모르겠는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누구보다 정확히 분명히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아버지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다면,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형식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의 진실된 삶으로 기도드려야 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중보기도)
기도의 내용을 자신을 위함에서 다른 사람을 위함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무게 중심을 우리 자신의 필요에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사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본 회퍼는 “중보기도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욕조와 같아서 개개인이 날마다 들어가야 하는 곳이며 교제가 날마다 이루어져야 할 곳이다.”라고 하여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강조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 기도의 유익은 무엇이며 이 기도를 위한 훈련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1) 성경에 나타난 중보기도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나아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요청한다(삼상12:19). 이 요청에 대해 여러 가지 말하는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사무엘의 결단이 나타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를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이 왜 죄인가? 보통 우리는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 죄라고 여기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이 더 큰 죄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해 주셨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제자들은 진리로 거룩케 해 주시기를(요17:17),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눅22:31,32),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우펀에서 성도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성령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롬8:26).
사도 바울은 자신이 중보기도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기를 요청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15:30).”
2) 중보기도의 효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많은 역사를 이루게 된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의 ‘우리’의 정신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면서 또한 믿는 자, 믿지 않는 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중보기도의 역사이다. 중보기도가 가져오는 역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다른 사람을 위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우리의 기도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딤후1:3).”
■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기도가 이룬다.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 특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신다. 그리하여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이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를 얻은 은사로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11).”
■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게 되며, 기도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하셨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몬22).”고 하여 기도 중에 간구와 함께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준비케 됨을 말씀하고 있다.
3) 중보기도의 실제
■ 왼손 손가락을 짚어가며 기도하기
기도드릴 때 우리는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이때 왼손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기도드리는 것은 기도해야 할 대상을 잊지 않고 기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 엄지 : 나의 몸 가까이 있다. 자신과 가족, 친척을 위해 기도한다.
- 집게 : 교회내의 지도자들(목사, 교직원, 장로, 집사, 교사)을 위해 기도한다.
- 장지 : 국가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 무명지 : 사랑하는 이들(제자, 친구 등)을 위해 기도한다.
- 새끼손가락 : 연약한 이들(믿음이 약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 장애우
등)을 위해 기도한다.
■ 기도 수첩 사용하기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수첩에 기록하여 기도시간에 활용한다. 응답이 있을 때 기록하면 그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게 된다.
대상 |
제목 및 내용 |
시작 |
성구 |
응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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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차드 포스터의 방법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 후에, 나의 기도가 필요한 개인이나 상황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다음에는 그 사람들이나 상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어떤 특별한 통찰력이 생겨 기도의 내용을 인도하시는지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완전한 확신을 갖고 가장 적절한 말로 기도한다. 소리를 내어 중보기도를 한 다음 나는 잠시 동안 기다리며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도록 요청한다. 그리고는 기도의 부담이 사라질 때까지 그 개인이나 상황을 위해 계속 기도한다. 기도하는 동안 성령님께서 가르치심을 주신다고 느낄 때 작은 기도 수첩에 간단한 메모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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