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에서는 두가지 옷이 나옵니다. 하나는 아담부부가 범죄한 후 즉시 자신들이 만들어 입었던 무화과 나뭇잎 옷이고(7절), 또 하나는 죄의 해결책이 주어진 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입히신 가죽 옷(21절)입니다.
이 두 옷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종류의 인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무화과 나뭇잎 옷을 입은 사람들.
이들은 죄로 인한 수치감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인간은 영원히 수치감을 느끼면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라도 수치를 가려야만 그나마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꾸미기를 좋아합니다.
백발이 수치가 아니건만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검은 색으로 염색을 합니다.
외모가 부끄러운 사람들은 화장을 하고, 기능성 속옷을 입으며, 굽이 높은 신발을 신습니다.
속이 빈 사람들이 겉으로 더욱 요란을 떠는 것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고 싶어서인 것입니다.
수치를 가리려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면의 수치스러운 인격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법으로, 예절로, 교양으로, 도덕으로 무장을 합니다. 그래서 얼핏보면 참 신사답고, 인격자같고, 교양인 같고, 지성인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 내면은 여전히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입니다.
다만 겉으로만 그렇게 꾸미는 것 뿐입니다.
무화과 잎 옷은 시간이 가면 마르고 부숴져 버려서 입으나 마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또 다시 만들어 입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새로 만들어 입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와 수치의 문제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것은 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를 못합니다.
종교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을 꾸미는 노고와 수고에 불과합니다.
종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스런 인간 사이를 중보해줄 제사장, 혹은 제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무거운 계율적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수고와 노력만 따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영원히 수립해 주지를 못합니다.
종교의 대표격인 것이 이스라엘 종교(유대교)입니다.
유대교는 모세가 만든 종교입니다.(요1:17) 나중에 에스라에 의해 개혁되었습니다. 범죄한 후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리려고 했던 아담의 후손에게 종교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천사를 보내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갈3:19)
그래서 거기엔 제사장이 있고, 피를 흘리는 제물이 있고, 도무지 지키지 못할 무거운 계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이 무화과 나뭇잎 옷인 줄은 모르고 열심으로 그것을 지키고 그 제도를 순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좇으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유대교, 곧 종교가 보여준 결론은 인간은 어떠한 완벽한 종교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 가죽 옷
하나님은 무화과 나뭇잎 옷 대신, 전혀 새로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가죽 옷은 짐승이 죽어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짐승이 피를 흘림으로써 만들어진 옷입니다.
이것은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음을 암시합니다.
"피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옷은 인간이 스스로 수고하여 만든 옷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옷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을 내게 더 하심이 ..."(사61:10)
이 옷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옷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처럼 죄없는 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수치도 부끄러움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죽 옷은 나뭇잎 옷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옷을 입은 자는 더 이상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죄인으로 드러날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신비한 옷이 되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제사장이십니다. 또 제물도 되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계율 자체도 되시고, 그 계율을 우리 안에서 친히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계율이 더 이상 무거운 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이처럼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롬10:4) 이 말은 종교를 끝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더 이상 종교가 필요없습니다.
마치 가죽 옷을 입은 사람은 더이상 무화과 나뭇 잎의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3. 무화과 나뭇잎 옷을 벗으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여전히 무화과 나뭇 잎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종교생활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린대로 <제사장이 따로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 따로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제사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의 일을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신이나, 천사나, 죽은 인간이나 산 인간을 중보자로 인식하고 그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다른 제사장을 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는 신부나 마리아 심지어 죽은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나 성인들을 중보자로 삼아 자기의 구원을 위해 빌어줄 것을 부탁을 합니다.
이것에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마르틴 루터는 "만인 제사장직"을 천명했습니다.
곧 믿는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본래 베드로나 바울도 말한 내용들입니다.
그것을 1,500년 이나 인식하지 못하고 종교에 속아왔던 것이지요. 이렇게 종교는 억센 잡초와 같아서 하나님의 밭을 망쳐 놓고 있습니다.
지금 개신교는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성직자니 평신도니 구분하는 자체가 그 노선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직자에겐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특권이 더 있는 것 처럼 인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세례식이나 성찬식이나 축도를 목사만이 독점해야 할까요? 그것은 어디에서 나온 법입니까?
성경에 보니 빌립은 집사였는데도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축복이건 축도건 어느 특별한 직분자의 전유물인 것 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제사장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23:8)
모일 때마다 빵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선언하는 행위는 지금도 그리스도를 제물로 제사한다는 뜻인데 이것 또한 종교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종말이 고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종교(유대교 포함)라는 용어는 좋은 의미로 쓰여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종교에서 나와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유대교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왔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갈1:13)
그리고 차라리 유대교로 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루터도 칼빈도 혼합종교인 카톨릭으로 부터 나왔습니다. 아쉬운 것은 불완전하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개신교는 반쯤은 종교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화과 나뭇 잎 옷을 입은 채로, 가죽 옷도 입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온세상의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수님은 왜 육신을 입고 오셨나? (0) | 2011.07.21 |
---|---|
[스크랩] [말씀 단상] / 환난을 해결하는 첩경은? (0) | 2011.07.20 |
[스크랩] 첫째 사망과 두째 사망. (0) | 2011.07.19 |
[스크랩] 선하게 사는 길 (0) | 2011.07.18 |
[스크랩] 우리가 얻을 기업 (0) | 201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