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장의 강조점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11)는 것입니다.
안식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말이 바로 전장 18절에서 언급되었던 말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뇨?"
즉, 안식이란 말은 구약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가나안인 것입니다.
안식할 때가 남아 있음
그런데 가나안 정복시대가 지나간 것은 한참 되었는데도 다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니...무슨 뜻인지요?
기자는 안식에 대한 약속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위해 다윗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후론하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의 안식은 참된 안식의 모형이었을 뿐입니다.
실제의 안식은 신약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안식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7)
이러한 안식을 구약 이스라엘 처럼 놓치지 말고 이번에는 꼭 취득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은 불신앙으로 인해 놓쳤으나 우리는 놓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혹 미치지 못할자가 있을까 함이라."(1)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복음을 들은 자들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2)
그들이 못들어가게된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전장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해서 혹 안다고 해서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화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바울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이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은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일을 하시고 난 뒤에 안식하셨습니다. 이러한 안식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하였으며 또 다시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4-5)
"칠일에 쉬셨다"는 것은 창세기 2장 2절의 말씀이고,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시95편 11절 말씀입니다.
창2:2의 말씀은 창조후 쉬신 하나님의 안식을 말씀하심이고, 시95:11의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곧 우리의 안식이 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7일째의 안식은 모든 자연계를 지으시고 난후에 되어 졌지만, 그것은 영적인 세계의 완성 후에 있게될 영원한 안식의 예고인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 논쟁에 휩싸일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날짜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도 예수님은 일하셨으며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5:17)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얻게 되는 율법과 육신으로 부터의 자유와 평강이 안식인 것입니다.
아무튼 이 구절은 우리에게 안식이 남아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쉬신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약속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것만으로 다 끝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증거는 이 구절을 말한 사람이 다름아닌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말라' 하였나니 "(7)
다윗은 출애굽 후 500년 이나 지나서 산 사람인데도 안식에 대해서 여전히 미래적으로 전망한 사람입니다.
기자는 또 안식에 대한 약속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변증합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8)
그렇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이므로 다른 날을 말씀하실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통하여 "오늘날 너희가 ..."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안식에의 약속은 여전히 남아 있음이 틀림없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9)
안식의 약속의 대상
그러면 이 안식에의 약속은 누구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일까요?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믿으라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이미 믿는 성도들을 일깨워주는 말씀일까요?
그것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아보는 것으로 해답이 주어지리라 봅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6:1-2)
다시 말하면 히브리서 독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기자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처럼 중간에 낙오자들도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안식은 모든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는데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하나님 처럼 자기 일을 쉰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10)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11)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을 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안식은 저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믿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순종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믿어야 할지..어떻게 순종해야 할지...그것은 믿음장이라고 불리우는 11장에 가서 자세히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의 예리함
기자는 갑자기 말씀의 예리함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2)
말씀을 양날가진 칼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히 그것을 수술용 메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용 메스는 아주 날카롭기 때문에 눈의 망막까지 젖혀놓고 눈동자를 수술하고 또 덮어 놓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가지고 혼과 영을 분리해 내며 생각과 뜻을 분리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영의 것을 따르고 육의 것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깨끗케 하며 온전케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13)
말씀 앞에 감추어질 것이라고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온 세상이 지어졌으니, 무엇인들 말씀앞에서 숨기워질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14절 부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갑니다.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인데 그것은 5장에 넣어 상고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지어다."(14)
잠깐 언급하자면 그리스도는 큰 대제사장으로써 하나님께로 승천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는 하늘의 성소에 먼저 들어가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5)
이 세상에서도 밀림속을 여행하려면 가이드가 필요한 법인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일에 어찌 가이드가 필요없겠습니까? 예수님은 먼저 앞서 가신 분이십니다. 한번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그 좁은 길, 험난한 길을 가셔서 마침내 성공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시험들을 다 당해 보신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 우리의 돕는 자로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는 우리 인생이 겪는 모든 삶의 애환을 다 겪으신 분으로써 진정 우리의 조력자가 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분이 계시지 않다면 우리는 안식은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안식에 먼저 들어가신 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앞서 가셨으니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지니라."(16)
이 길을 가는 것은 도움을 받지않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도움을 입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 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담대히 나아가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셨고, 또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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